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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기다림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떤 것이 내 앞에 드러날 것만 같은 징후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징후는 단지 미래의 어떤 것을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에 대해서도 똑같이 관계된 일이었음을 알게 되곤 한다. 만약 과거의 어떤 일을 우연한 계기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해 현재의 일들이 다르게 비치고, 그것이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도 뒤바꿔 놓는 경험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눈 앞에 펼쳐진 몇 획의 선과 얼룩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마치 길을 헤매다 방향을 찾아낸 것처럼 다음에 긋거나 칠해야 할 부분이 문득 보이는 시간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광경을 상상하여 그림으로 옮기는 순간에 관해 생각해본다. 나에게 그것은, 상상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른 어떤 장면을 세밀하게 재현하려 애쓰는 일처럼 뚜렷한 목적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명치 않은 기억의 틈새를 메꾸어 가며 눈과 손의 협동을 통해 현실을 직조하듯 조금씩 더듬어 가는 일에 더 가깝다. 바로 그것을 떠올려 제시하고픈 현재의 마음이 어렴풋한 가능성을 하나하나 결정 짓게 하긴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적고 지금 내린 결정은 못 미덥기만 하다. 그래서 망설임 끝에 남은 흐릿함도,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거침없이 그어낸 선도 모두 소중한 형태가 된다. 그 모두가 어우러져 비로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그림이 된다.
그래서인지 형태가 떠오르는 순간은 여러 갈래의 길을 앞두고 고심하는 삶의 일반적인 시간처럼 오히려 당연하고 평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모호한 미래 앞에서 망설이다가도, 이내 무모하게 도전해 보고, 또다시 실패했다는 기분에 좌절하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이들이 알아채기 힘든 복잡한 비밀을 그림 속에 숨겨두고 스스로 만족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을 배려하듯 쉽게 읽히는 형태를 천진난만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다소 엉뚱하게도 그림의 모든 순간을 품성, 미덕, 실천과 같이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추구하게 되는 다른 모든 것과 자연스레 연결 짓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오늘 하루 나도 모르게 어느 색을 칠하며 자만심에 도취하였다가 이내 부끄러워져 그에게서 벗어나려 애쓰는 시간을 보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아주 조금 더 성숙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나의 작업은 마음이 내리는 어떤 순간의 결정에서 비롯된다. 무엇을 기억하든, 그것을 어떻게 떠올릴지는 현재의 내 마음에 달려 있다. 의식이 어떤 존재, 상황, 느낌을 떠올리는 현재에, 그중 일부의 기억은 지금 내 마음이 강렬하게 요청하는 바에 따라 단단하게 규정되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선으로 표현하려는 과정에서 무엇을 단념하고, 무엇은 끝까지 관철하려 했는지 그 사이에서 내려진 어떤 결정이 최종의 형태로 남게 된 것이겠다. 양보와 절충, 배려로 어느 지점에서 누군가에게 이해되는 형태를 결정 짓는 일은 헤아릴 수 없는 나머지의 비결정적 요소들을 희생하고서라도 선명한 형태로 우뚝 서 있고 싶은 욕구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욕심을 내려놓음으로써 조금이라도 공감의 문턱을 낮춰 많은 사람의 만족감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도덕심에 근거해 있는가? 간단한 무엇을 선으로 그리는 작은 일조차도 도덕적 판단과 가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이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그리는 순간에 감히 그 행위의 미덕을 떠올리고 어떤 만족감에 이르고자 한다. 그러므로 선, 면, 색 등으로 이루어진 형태를 추구하는 과정은 확신 없어서 느끼는 불안감, 때로는 용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무책임함, 그것이 서서히 확신으로 커지기도 하고, 후회가 엄습하기도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이내 조급함으로 변하고 아쉬움과 공허함만 남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변화무쌍한 시간은 종국에는 형태에 이르게 된다. 익숙한 이미지 즉, 이미 시선에 쉽게 포착되는 단순한 형태에 몸을 맡기는, 그저 선입견 없이, 그 어떤 결정 내린 바 없이 아이처럼 리듬에 몸을 맡겨 그 단순함을 반복하는 행위가 큰 해방감을 준다. 그리고 이는 다른 의미에서 큰 숙제이다. 가능하다면 모든 형태를 수용하고, 몸을 맡겨보고, 그것의 형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실패와 성공을 기억하는 것이 작업에서 얻고 싶은 바이다.
2025년 5월 김태진
Could the meaning of living be defined by waiting? There are moments when I feel a manifestation is about to emerge before me, though unseen. Upon reflection, I often realize that this sign is not merely about anticipating something future, but is equally related to the present and the past. This is because I frequently experience instances where viewing a past event from a new perspective, perhaps triggered by coincidence, causes current affairs to appear differently, in turn completely shifting my outlook on the future.
For me, the act of painting is a time when, after gazing upon a few strokes and blots spread before my eyes, the next part to draw or paint suddenly appears, much like finding one's way after being lost. I contemplate the moment of translating an imagined, never-before-seen scene into a painting. For me, this is not about achieving a distinct goal, such as painstakingly reproducing a vivid scene that surfaced in my imagination. Rather, it is closer to gently piecing together reality through the collaboration of the eyes and the hand, filling in the gaps of an ambiguous memory. While the present desire to recall and present that very thing leads to the determination of vague possibilities one by one, there is little I can be certain of, and the decisions I make now often feel unreliable. Thus, the blurriness left after hesitation, and even the lines drawn excessively bold and unrestrainedly, all become precious forms. It is when all of these harmonize that a painting never before seen comes into being.
Perhaps this is why the moment a form emerges is sometimes perceived as ordinary and commonplace, much like the general time of life spent contemplating multiple paths ahead. I hesitate before an ambiguous future, yet immediately challenge it recklessly, and then feel frustrated by the sense of failure. Sometimes I hide complicated secrets within the painting, satisfying only myself, and sometimes I innocently draw forms that are easily deciphered, as if out of consideration for others. It is not strange at all—though perhaps a little eccentric—to naturally connect every moment of painting with everything else pursued in life, such as virtue, goodness, and practice. Perhaps today, without my knowing, I spent time indulging in conceit while applying a certain color, only to become ashamed and struggle to break free from it. I wish I could have matured just a little more today.
My work originates from a momentary decision made by the heart. Whatever I choose to remember, how I recall it depends on my current state of mind. At the present moment, when consciousness recalls an existence, situation, or feeling, some of those memories are firmly defined by what my heart intensely demands now. In the process of trying to express something through line, the final form is determined by the decision made between what was abandoned and what was attempted to be carried through to the end. Does the act of determining a form—one understood by someone at a certain point through compromise, concession, and consideration—stem from the desire to stand prominently clear, even at the cost of sacrificing countless non-deterministic remnants? Or is it based on the moral desire that by letting go of my own greed, the threshold of empathy might be lowered slightly, allowing satisfaction to arise in many people? Even the small act of drawing a simple object as a line often feels like it raises issues of moral judgment and value.
Thus, in the moment of drawing, I dare to recall the virtue of that act and seek to attain some satisfaction. Therefore, the process of pursuing forms made up of line, plane, and color is a time of anxiety born from lack of conviction, sometimes a sense of irresponsibility—a 'just do it' attitude that feels like courage—which slowly grows into certainty, or is suddenly invaded by regret. This is why a mind full of confidence just a moment ago suddenly transforms into impatience, leaving only regret and emptiness.
This ever-changing time ultimately leads to form. Surrendering oneself to familiar images—simple forms easily captured by the eye—and repeating that simplicity, merely giving oneself over to the rhythm like a child, without prejudice or definite decision, provides a great sense of liberation. And this, in another sense, is a great homework assignment. If possible, what I wish to gain from my work is to accept every form, surrender to the process, and remember the failures and successes encountered in the pursuit of its form.
Taejin Kim, May 2025